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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천일염

생활필수품인 화폐로 사용 되었던 소금

생활필수품인 화폐로 사용 되었던 소금

 

인류의 역사는 곧 소금의 역사라는 이야기가 있죠. 소금은 우리의 생존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요리를 할 때에도 필수적으로 필요한 재료예요. 생선이나 고기를 굽고 채소를 데칠 때, 국수를 삶을 때도 가장 기본적인 밑간은 소금에서 비롯되죠. 오늘은 이러한 소금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짚어보려 해요.


폐로 사용되었던 소금


 


지금은 기술과 교통수단의 발달로 어디서나 소금을 싸고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소금을 하얀 황금이라고도 불렀을 정도로 소금은 귀한 존재였어요. 중세시대에 유럽 곳곳에서 소금 제조나 채취는 중요한 사업으로 인식되었고,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는 소금광산으로 부를 축적한 대표적인 곳이기도 해요. 생활필수품이었던 소금은 화폐의 수단으로도 사용되어 로마에서는 군인이나 관리의 봉급을 대신해서 소금을 지급했다고 하네요. 또, 사하라 사막을 가로지르는 대상들의 3대 교역 품목 중 하나가 바로 노예였어요. 12세기에 소금은 가나에서 금 값으로 교환되기도 했으며 심지어 노예 한 명이 그의 발 크기만한 소금판과 맞교환되기도 했다고 해요.




네덜란드에 부를 선물한 청어와 소금

 



소금은 이 외에도 한 나라의 흥망성쇠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요,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소금과 청어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네덜란드의 사례랍니다. 청어는 한꺼번에 떼로 몰려오면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는 엄청나게 포획되는 종이라, 근대 이전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바다를 끼고 있는 곳에서는 인류의 주된 식량원 중 하나였어요. 하지만 청어는 회유 경로가 바뀌면 어획량의 변화가 걷잡을 수 없이 큰 어종이기도 한데요, 세계사를 통틀어보아도 청어 어획량은 늘 들쑥날쑥해서 청어가 잡히는 지역의 경제를 좌지우지하곤 했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네덜란드인데요, 스칸디나비아 근처 발트 해에서 잡히던 청어가 14세기부터는 해류의 변화로 네덜란드 연안 북해로까지 밀려드는 이변이 일어났어요. 이에 네덜란드인들은 너도나도 청어잡이에 나섰는데요, 하지만 청어는 내장에 지방이 많은 생선이라 실온에서 금방 상해버렸어요. 그러던 중 네덜란드의 한 어민이 갓 잡은 청어의 내장을 단칼에 벨 수 있는 작은 칼을 개발했고, 이후 이 칼로 배 위에서 청어의 배를 갈라 바로 내장을 제거하고 소금에 절여 통에 보관하는 염장법을 고안해내기 시작했다고 해요. 이것을 육지에 들어와서 한 번 더 소금에 절이면 1년 넘게 맛있는 생선을 보관할 수 있었는데요, 이로써 네덜란드 어선들은 훨씬 더 먼 바다로 나가 청어를 포획할 수 있었어요. 당시 중세 유럽은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았기에 오래 보존할 수 있는 소금에 절인 생선과 돼지고기를 주로 먹었는데, 이러한 청어잡이는 네덜란드에 큰 부를 선사했다고 해요.




도시의 부흥을 이끌어낸 소금 거래




과거 무거운 소금을 나르는 상인들은 두 가지 골칫거리가 있었는데요, 바로 소금을 나를 길을 찾는 것과 도적들의 공격이었어요. 소금은 중요한 거래 수단과 재화로 그 가치가 매우 높았기에 영주들은 곳곳에 소금을 무사히 이송할 수 있도록 길을 평평하게 닦을 것을 지시했다고 해요. 또, 길목마다 기사들을 배치해 소금 마차의 안전을 책임져주었다고 하네요. 물론, 이는 무료는 아니었고 상인들은 영주에게 충분한 통행세를 헌납해야했죠. 이런 이유로 수많은 영주와 도시는 소금을 통한 통행세로 큰 돈을 받았고, 이때 정리한 도로와 길목은 다양한 상공업 활동의 발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하네요.



이렇게 화폐로 사용되었던 소금, 그리고 부를 선사한 소금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두루 살펴보았는데 잘 살펴보셨나요? 요즘에는 흔히 접할 수 있는 소금이지만, 그래도 일면을 살펴보면 소금은 단순히 맛을 결정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삶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답니다. 소금에 관한 재미있는이야기를 돌아보면서, 소금에 대해 더욱 감사하고 소중한 마음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싶네요. ^^